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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믈린에서 만난 신부

 

몇 년전 모스크바에 갔을 때 일이다. 거의 폭설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눈이 내리는 날 크레믈린 극장에 예약된 공연을 보러 나섰다. 춥기도 하지만 우선 이렇다 할 교통편이 없어 망설이다가 겨우 지나던 자가용을 타고 광장으로 달렸다.

차 안에서 내심 이렇게 추운 날씨에 과연 얼마나 관객이 있을지, 썰렁한 장내분위기는 아닐지 걱정되었다. 그러나 크레믈린 광장을 지나 극장 입구에 들어섰을 때 놀랍게도 거의 빈 좌석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더군다나 그날 공연은 '나폴레옹'이었는데, 1812년 나폴레옹이 50만명의 군대를 이끌고 러시아를 침공한 기록으로 본다면 러시아로서는 원수로 생각할 수 있지만 입장객의 대다수가 러시아 사람같았다.

공연 자체도 스케일이 있고, 무대처리나 조명 등이 매우 훌륭하였지만 커튼콜(curtain call)도 몇 번씩 반복되었다. 아무튼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다시 한번 나를 놀라게 하는 일이 있었다. 막이 내리자마자 갑자기 여러 사람들이 무대 앞으로 달려갔다. 유심히 살펴보니 앞자리에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는 신부가 보였다. 조그마한 꽃다발을 안고 있는 신부의 모습은 언뜻 보아 백러시아계 여인으로 매우 우아하게 보였다.

길다란 드레스를 끌고 마치 결혼식장을 막 퇴장하는 사람처럼 복도를 걸어나오는데 많은 사람들이 눈인사로 축하의 뜻을 전달하면서 그녀에게 통로를 양보하였다. 신부는 바로 그날 오후에 결혼식을 올리고 신랑과 함께 백년가약을 자축하기위하여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라 공연을 보러 왔던 것이다.

러시아의 공연문화, 국민들의 열기는 설명하지 않아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많은 할머니들의 대화에서 공연이 소재거리로 등장하는 경우는 일상적이다. 프로포즈를 할 때도 공연신청은 가장 정중하고 편리한 수단이다. 아예 공연목록만 정리해서 발행하는 정기간행물이 있고, 한 작품을 다른 사람이 감독하고 공연하는 작품만을 찾아다니는 매니아도 있다.

경우는 다르지만 1990년대 초반에 중국에서 겪었던 일이다. 전세를 낸 택시로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하고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그 기사와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 운전기사의 미술품에 대한 지식이 전문가의 수준에 도달해있었다. 우창수어(吳昌碩)나 리크어란(李可染) 등의 예술세계를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혹시 전직이 평론가가 아니신지...그러나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지독한 애호가일 뿐입니다.'소품이지만 꽤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20여점 정도 소장하고 있다는 그의 표정은 흘러나오는 콧노래와 함께 흥겨운 모습 이었다.

 

이제 문화경쟁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말한지도 상당시간이 흘렀다. 한 나라의 국력을 경제소득의 지표로 계산하던 냉전의 시대를 넘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문화예술의 향유에서 찾아가려는 세계인들의 의식변화는 물질적 충족보다는 감수성 자극에 더욱 삶의 의미와 가치를 느끼고 있다.

공연장에서 만나서 더욱 아름답게 보였던 모스크바 크레믈린 극장의 러시아 신부, 비록 운전기사였지만 중국의 거장들을 흠모하면서 그들의 수준에는 못미치지만 그래도 자신이 애호하는 작가들의 작품에서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들은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 두 사람의 간단한 예로 문화선진국이란 경제적인 수치만으로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 물론 우리에게도 문화적 저력을 보여주는 뉴스가 있었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50일이 안되어 100만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은 문화에 대한 우리국민들의 잠재된 저력을 보여주었다.

지난 달 말 애석한 소식을 접했지만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세계 어느나라를 가든지 저명한 미술관에서는 그의 작품을 만나게 된다. 그 감격에 눈시울이 뜨거워질 정도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 대부분은 아직도 근본적인 의식구조에서 언제부터인가 문화예술을 홀대하는 습관들이 만연해있다. 입시교육에 찌들어가는 중등교육에서 예체능 부분이 축소되고, 연극이나 무용 공연장의 상당수 티켓이 친지들이나 지인들의 초대권으로 채워지고 있으며, 그나마 자리가 차지 않아 쓸쓸한 무대에서 나홀로 공연을 해야만 하는 현실이 참으로 답답할 지경이다.

 

2006. 2. 12. 광주일보

 

초판 700권 시대

 

최근 친구가 운영하는 출판사를 들렀을 때 초판을 700권으로 하느냐 1,000권으로 하느냐를 고뇌하면서 허탈한 모습으로 말을 건넸다. 도저히 초판을 팔 자신이 없고, 결국 창고에 쌓인 보관료만 지불되는 꼴이 되어 난감하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몇 년이 걸려서 초판이 팔려나간다 하더라도 재판인쇄는 대다수 엄두도 못 낸다는 것이다. 가뭄에 콩나듯이 팔려나가는 수입보다는 아예 사장시키는 것이 편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거니 생각했지만 기초학문의 경우 수년간 각고 끝에 완성된 원고를 출판하지 못해서 고초를 겪는 모 교수의 독백을 들으면서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가를 자탄하게 되었다.

이제는 대중적인 소설류나 아동물의 만화책이 그나마 효자노릇을 한다고 뒤늦게 수선을 떠는 출판사도 적지 않지만 설상가상으로 정가의 50%까지 할인을 불사한다는 온라인상의 혼란이 가중되는 요즈음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그 친구처럼 최후의 등대지기라는 사명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하버드대학의 장서가 1340만 권 정도이며, 일본의 초등학교 학생 월간 독서량이 7권을 넘는다는 말은 그저 꿈같이 들리더라도 기초학문을 지켜온 학자들의 자조 섞인 한숨은 바로 우리의 미래에 대한 한탄으로 이어진다. 하기야 얼마 전 전국 4백 개의 공공도서관 년간 도서구입비가 2백억 원이라니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치열한 취업난도 그렇지만 두뇌한국사업, 각 대학의 실용학문에 대한 지원추세에 밀려서 전통학문이라는 말은 아예 꺼내보지도 못하고 숨을 죽이게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제 만화나 게임의 문화가 드디어 제국을 건설한 듯하다. 그것이 아동이나 청소년들의 문제일 뿐 아니라 모든 것을 경제논리로 간주하려는 전환기의 오류는 우리의 자아와 나아가서는 범 국가적인 정체성의 붕괴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초판 700권의 시대, 그나마 기회를 갖는 학자들은 행복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적어도 논의에 뛰어들 기회를 잡은 행운아들이기 때문이다.

 

2001. 5. 17. 대한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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