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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은 아름답다

 

며칠 전 인사동에서 우연히 만난 몇몇 화방이나 표구사를 하는 분들이 점포 때문에 하는 푸념을 들었다. 작품들이 점차 대작으로 달라져서 도저히 좁은 공간으로는 화판이나 액자제작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작품들의 대형화 추세는 공모전, 대학의 강의실을 비롯하여 일상생활에서도 얼마든지 느껴진다. 작품의 질과는 상관없이 일단 시위를 하고 보자는 규모의 확장은 결국 공사로 따진다면 부실공사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다. 그만큼 밀도가 없는 부실한 작품들을 양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생전에 불과 20여 점만을 남기고 갔지만 불과 77×53 cm의「모나리자」를 비롯한 대표적인 작품들은 우리들에게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고 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가 그렇고,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나 「부작난도不作蘭圖」역시 대작이 아니지만 미술사에서 보석 같은 작품들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중섭이 그렇고 이상범, 변관식, 박수근이나 장욱진 등 대표적인 작가들이 그렇다. 양적으로도 소수에 그치지만 정수를 보여주는 예가 너무나 많다. 고려청자가 그렇고, 고려불화 역시 얼마 남지 않은 작품들이지만 모두가 국보급으로 지정해도 좋을 만큼 우리문화의 유산이 되고 있으며 미술사에서 이같은 예는 얼마든지 많이 있다.

최근 들어서 우리의 의식 속에는 언제부터인가 양적인 과시에 집착된 부풀리기나 규모의 시위가 질적인 절대가치보다 앞서가는 추세이다. 보다 크고, 높고, 많은 숫자를 좋아하게 된 것은 심리적으로 보면 단기적으로라도 규모에서 압도하려는 의식이 반영된 것이지만 이같은 흐름이 결국 거품가치를 양산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호당가격제라는 신기한 그림값을 통해 거래되어온 우리 미술시장의 기이한 현상 역시 작품의 절대가치를 무시한 오류이며, 거시적으로 생각해보면 백화점식의 확장을 해가는 기업이나 교육기관의 팽창도 결국 전문화된 경영이나 밀도있는 교육과 연구를 포기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로 제기된다.

 

“작은 것은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다. 미술작품에 한정된 말은 결코 아닐 듯 한 이 한마디가 다시금 새롭게 떠오른다.

 

2001. 5. 31. 대한매일

 

미술대가' 씨앗 어릴때 뿌려야

 

윤이상, 백남준, 정명훈 등이 다 우리나라에서 예술전문교육을 받은 분들이 아니다. 국제화시대를 맞아 우리의 교육열을 감안하면 그 양적인 면에서 이제 세계적인 예술가를 상당수 배출했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2만 여명에 달한다는 미술계열 대학의 입학정원도 그러하지만 디자인, 영상관련 미술인구도 급속도로 증가되는 추세에 있어 문화대국으로서의 양적인 자질은 갖춘 셈이지만 작가들이나 디자이너들의 경쟁력이 세계적인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물고기를 잡아줄 것이 아니라 잡는 방법을 교육하라'는 유태인들의 교육방법은 이미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지식만을 채워 가는 교육이 아니라 그의 창의력과 상상력에 불을 지펴 가는 선진적인 교육이 중요하다고 외치고는 있지만 이미 영아시기부터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못하는 교육의 문제는 우리 미술계의 난제를 잉태하고 있다.

일본이 중등학교까지 70색상을 체험한다는 결과분석에서부터 미국이나 독일의 초등학교 수준에서 프랑크 스텔라, 장 팅겔리 등의 현대적인 작품을 쉽고도 흥미로운 내용으로 100여 점씩 감상하고 비평하며 미술사를 이해하는 등의 DBAE교육이념을 실천하는 사례들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또한 선진국들이 수 백여 개가 넘는 각종 어린이 박물관과 미술관을 운영하여 문화적인 체험을 시도할 수 있도록 하는데 반하여, 우리는 오직 한군데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학교육을 말하기 전에 이미 어린이들은 초등학교에 진학하는 시기에 유아기의 빛나는 상상력이나 영감의 자유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은 현장에 있는 분들이면 누구나 인지하고 있다. 주제가 한정되고 색채가 제한되어져 가고, 소질에 자신이 없는 것처럼 포기해 가는 현상은 문화경쟁시대의 창의성을 향상한다는 점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요즈음 부족한 초등학교 교사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하루속히 유아, 초등교육에 미술교육전문가를 투입하여 그 전문성을 보완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며, 주요 지역에 어린이박물관, 미술관을 건립함으로써 게임에만 몰두해가고 있는 그들의 상상력을 훨훨 날게 하는데 사회교육적인 차원의 기반시설로 활용해야만 한다.

피카소 역시 일생동안 어린이들의 무한상상력과 놀라운 창의력을 동경하였고, 언제나 그들의 세계를 생각하면서 그칠 줄 모르는 창작열을 불태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제는 사회기반교육의 구축에 의하여 황홀한 영감의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동기유발과 기회를 제공하고 어린 시절부터 좌뇌와 우뇌 모두에 불을 지피는 장기적인 교육체계가 절실히 필요하다.

 

2001. 10. 31. 중앙일보

 

제2의 백남준' 원치 않는가

 

어느 고등학교에 특강을 나간 적이 있다. 학생들에게 '흰색을 연상하면 무엇이 생각나느냐'고 물었더니 한 학생이 킥킥 웃으면서 '앙드레 김이요'라고 대답했다. 그 천진한 모습을 보면서 기발한 상상력에 두 손 들어버렸다.

 

학생은 기발한데 교육은 경직

 

학생들은 이렇게 기발한데, 우리의 교육은 왜 그렇게 경직되어 있는가. 교육당국은 7차 교육과정에서 교사와 학교의 재량 활동과 교과 선택권을 부여하는 등 교육개혁을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정작 학생들의 창의성과 정서교육의 핵심인 예술, 체육 분야는 오히려 축소됐다. 그 결과 주당 1시간씩만 실기를 해야 하는 학년이 대부분이다. 이래서는 예체능 교육이 형식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이 제도를 일정 기간의 실험이나 폭넓은 의견 수렴도 생략한 채 실행한 졸속성도 문제지만 21세기가'문화의 시대'라는 대전제를 완전히 역행하고 있다. 그야말로 뿌리는 말라 가는데 열매의 수확을 어떻게 기대하겠는가.

설상가상으로 이번에는 교육인적자원부가'사교육비 경감대책'이라며 예체능 교과목 서열식 평가방식 폐지를 들고 나왔다. '점수가 없는 예체능 수업'의 결과는 아마도 학교 예체능 수업의 유명무실화일 것이다. 음악 시간에 영어 단어를 외우고, 체육 시간에 수학 공식 하나라도 더 외우는 식으로 변질되어 결국 예체능 과목은 수험생들에게 입시 준비에 거추장스러운 걸림돌로 치부될 것이다. 누가 대입 내신에 반영되는 시험을 앞두고 점수도 없는 과목 공부에 열중하겠는가.

또 하나의 문제는 예체능에 장래를 건 수많은 꿈나무들이 좌절감과 패배감을 맛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가장 중시하는 전공과목이 내신 점수에도 못 들어간다는 현실을 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교육당국자는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소수 부유층 학생의 예체능 사교육에 지출되는 비용은 전체 학생들의 국어 영어 수학 사교육비와는 비교도 안 된다. 현행 예체능 점수체계도 실기 기본점수로 약 70점을 부여하고 전체 평균을 80점 정도로 유도함으로써 점수 차가 크게 나지 않는다. 또 예체능 점수는 평소 수업 태도나 준비 상황을 수행평가에 반영하는 등 이미 상당한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다.

우리가 예체능교육을 중시해야 하는 이유는 제2, 제3의 월드컵 신화나 백남준, 조수미, 박세리, 박찬호 등의 탄생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의 전반적 추세가 맹목적인 소득지표의 추구에서 정서적 삶을 갈구하는 쪽으로 전환해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곧 문화에 대한 폭발적 요구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디즈니사가 만든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한 편의 수익금이 1조 2천억 원으로 우리나라 문화관광부 1년 예산을 넘는다. 이제는 문화가 단순 취미의 차원을 넘어 국가의 전략산업으로 자리 잡고 경제를 리드하며 창출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중등 교육은 바로 이런 시대를 주도할 새싹들을 교육하는 토양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문화예술 부문 선거공약의 요점은 '선진국 수준의 문화 인프라, 자유롭고 활기찬 문화예술인,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문화예술정책'이었다. 그래 놓고도 문화 인프라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예체능교육을 이렇게 무시해도 좋은 것인가. 자유롭고 활기찬 문화예술인들의 위상을 보장해주지는 못할망정 청소년들의 전인교육과 정서교육을 방해하고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꿈나무들의 싹을 잘라버리는 정책을 내놓다니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예체능 '내신제외' 시대흐름 역행

이번 교육부의 안은 새싹들의 정서를 삭막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학문의 불균형, 나아가 우리의 예술 체육 분야의 근간을 흔들어 놓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포퓰리즘적 퇴행적 정책보다는 오히려 철학이나 환경 등의 과목을 보강하고 특기적성 교육을 적극 활용해 공교육의 위상을 확보해 나가야 할 것이다. 물론 창의력 제고, 흥미 유발, 전문가 양성, 객관적 평가체계 등 교육의 질 관리와 시설 확충은 필수적이다.

 

2003. 4. 25 중앙일보

 

"순수예술, 그거 왜 하죠?"

 

'대학과 사회를 고발하고 싶다.'

얼마 전 한 여자졸업생이 오랜만에 교수연구실을 찾아와 이렇게 자조 섞인 독백을 했다. 이 학생은 모범생이었고, 대학원을 나와 조교를 거치면서 결혼까지 포기하고 미술작업에만 충실해온 우수한 재원이요, 촉망받는 신예 작가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리 작가생활을 열심히 해도 작품을 팔기 어려우며 대학에 취직하기도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순수예술 분야의 청년작가들이 겪는 아픔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일은 아니다. 문제는 거의 평생 동안 작품과 씨름하면서도 자괴감을 맛봐야 하는 경우가 너무나 허다하다는 것이다.

 

컬처노믹스(Cultunomics)의 시대

이 같은 현실을 타개해 보려는 예술인들의 안간힘은 2,823여 건에 541억 원을 넘어선 올해의 문예진흥기금 신청명세에서도 잘 나타난다. 결국 이 중 35.7%만이 지원대상으로 선정돼 131억 8천만 원 정도를 받게 됐지만, 아예 신청할 의지조차 잃은 작가들이 너무나 많다. 지난해에는 대통령의 지시로 현재 전체 문화예산의 16.2% 수준인 순수예술 분야의 예산을 2011년까지 25%로 높여 9천억 원으로 늘리고, 문예진흥기금을 2010년까지 1조 5천억 원(현재 4,144억 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 발표되기도 했으나 기획예산처와 사전 조율이 이뤄지지 않아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를 맞이하게 되었다.

'컬처노믹스(Cultunomics)'라는 말이 있다. 1990년대 피터 듀런드(Peter Duelund)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University of Copenhagen)교수의 말이었지만 새로운 문화적 선택과 기호에 의해 경제구조가 바뀐다는 뜻이다.

'유나이티드 컬러스 오브 베네통(United Colors of Benetton)'이라는 한 장의 포스터가 인종을 초월하면서 전 세계인의 구매력을 촉진시키기도 하고, 높이 300m의 에펠탑 하나가 프랑스의 문화적 자존을 상징하며 연간 400만이 넘는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는 세상이다. 2000년에 8,300억 달러이던 세계의 문화시장 규모가 2005년에는 1조 1,700억 달러를 상회할 것이라는 예측은 이 같은 현상이 앞으로 더 확산될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 이 같은 문화산업의 성공이 있기까지는 무수히 많은 가난한 예술가들의 노력과 절규가 뒷받침돼 있었다.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토스카니의 세상을 돌아보는 냉철한 철학과 창의력이 있었기에 베네통의 포스터도 가능했던 것이다.

기초학문이나 이공계 기피현상처럼 어느새 예술분야에서도 경영논리가 우선시되는 분위기다. 얼마 전 새 정부의 공약사항이라며 고교 예체능 분야의 성적이 입시 내신성적에서 제외된다는 발표가 나와 세상을 놀라게 한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문화생산비 소득공제, 문화벨트 조성 등을 제외하고는 새 정부의 공약 중 어디에도 정확한 수치로 뒷받침되는 순수예술 분야의 진흥계획을 찾을 수 없어 우울한 생각이 든다.

하기야 문화부문 예산이 전체 예산의 1.18%이니 과거에 비하면 획기적으로 올랐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작품구입비가 43억여 원에 머물러 소장품이 4,500여 점에 그치고 있는 우리 국립현대미술관의 위상은 아직도 참담하다. 수십만 점의 소장품에 이미 1천억 원대의 작품 구입비를 넘고 있는 외국의 유수한 미술관과 비교하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지방의 특수미술관 수준에 불과하다고나 할까.

 

지원수준 참담해

정작 예술가들 쪽을 돌아보아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예술가들도 새로운 시장논리에 부응, 생각의 속도를 개선해 최소한 자기 작품을 관리하고 적응하려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제도나 지원은 어디까지나 '응원군'일 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쳐 문드러지는 자신들의 그림자까지도 놓치지 않겠다는 전문가적 정체성과 철학적 의지는 어떠한 경제논리보다도 값진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문화산업의 기반으로서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는 순수예술 분야에 대한 새 정부의 정책이 궁금하다. 정부의 정책 전환과 예술가들의 의식 전환이라는 두 가지 축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에 따라 21세기 한국문화의 경쟁력이 좌우될 것이다.

 

2003. 1. 17 중앙일보

 

미술은행, 국민편에서 생각해야

 

참으로 오랜만에 한 차원을 달리하는 문화 정책의 기초 안이 발표되었다. 국가가 미술품을 구입하여 싼 값에 대여 서비스를 한다는 점에서 그간 예산 부족으로 작품을 구경조차 하지 못했던 공공기관들이나 열악한 환경에서 허덕이는 미술계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1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있었던 공청회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이 제도는 국고 25억 원으로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하여 이를 공공기관에 임대하고 미술 작품에 대한 감상의 기회를 늘리는 한편 작가들과 미술 시장의 흐름을 지원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추구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

작품 구입 방법은 공모, 추천, 현장 구입 제도를 입체적으로 활용하면서 작가와 미술 시장을 동시에 지원하는 효과를 거두고 질적인 우수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기본적인 안이다. 그러나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만큼 이견도 적지 않다. 즉 작가는 열악한 창작 지원의 형태를 우선해야 하고, 신진작가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화랑은 유통 구조의 확립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한다. 전업 작가 역시 그들의 어려운 현실을 비추어 보아 청년 작가 지원만으로 제한한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견이다.

미술은행의 목적 또한 은행에 걸맞게 작품을 담보로 한 융자도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지방 작가들의 소외, 집행 과정의 철저한 준비 등이 지적되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첫째는 이 제도의 시행 목적이 국민 문화 향수권 신장이라는 대전제에 있다. 즉 어떠한 작가의 작품을 구입할 것이지, 건전한 미술시장의 육성 지원이라는 의미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국민을 위한 문화 서비스가 가장 우선적으로 감안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험적이고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도 상당 부분 필요하지만 국민 정서와 기호도를 반영하는 작품들도 다양하게 소장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공공기관으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작품이 아무리 많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두 번째는 합리적 대화와 조율을 위한 토론 과정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안을 낸다하더라도 제각기 주관적인 발언만을 반복한다면 한계가 있다. 지금쯤은 미술계도 토론 문화를 활성화하고 경영 전문가들을 배출하면서, 작가나 화상들도 열린 시각으로 관련 행정 시스템 정도는 정확히 이해하려는 거시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언제까지나 순수의 시대에만 머무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 전격적인 시행을 하게 되는 미술은행제도는 아직은 시작 단계이고 점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사실상 올 해 25억의 예산으로 약 300여 점의 작품을 구입한다고 보아도 임대 수량이나 미술계의 요구를 다 반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는 영국이 GAC(Government Art Collection) 등 4개 기관에 2만 여점, 프랑스 7만 여점, 캐나다 1만 8천점, 호주 9천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 현황과 비교하면 아직 초기 단계일 뿐이다. 정부는 이러한 면을 감안하여 점진적인 지원 확대와 어려운 미술계의 지원을 동시에 해결하는 대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미술계에서도 각 단체나 작가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기 보다는 한 단계 나아가 충분한 토론을 통하여 중지를 모은다면 선진국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며, 국내 뿐 아니라 해외 공관 등에도 많은 작품을 전시하여 문화 한국의 이미지를 한 차원 달리하는 과감한 정책 지원이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05. 1. 31. 동아일보

 

호남 예맥, 중심 축 잃고 있다

 

얼마 전 광주를 문화수도로 육성한다는 소식에 매우 반가운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 현실과 방법에서는 많은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현재 광주나 전남지역의 문화적 조건은 어느 지역 보다도 우수하다. 담양이나 진도, 땅 끝, 강진이나 해남 등의 자연과 정원, 도자기, 공예품 등을 비롯하여, 예술이라고 부를 만한 음식문화, 곳곳에 산재된 유적지, 걸죽한 가락으로 이어지는 여유의 미학은 그 자체만으로 이미 문화수도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것들은 그 대부분이 선조들의 유산이다. 문제는 이를 올바로 계승하고 발전적으로 이어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수도 전략이 보다 면밀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

정부의 의지나 외형적인 인식과는 달리 광주, 전남지역의 현대화된 문화 인프라는 오히려 타 지역에 비해서 별로 나을 것이 없다. '풀뿌리 문화'라고 말 할 수 있는 지역사회 저변의 구조는 광주만 해도 사립박물관이 한 곳도 없으며, 공립을 합쳐 미술관은 세 곳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사이트를 검색해보면 이와 같은 현실은 단적으로 나타난다. '남도화맥' '호남예맥' 어느 것을 입력해도 이렇다 할 내용이 없다.

문화예술의 육성과 문화관광 육성, 전통의 보존과 활성화는 각기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호남의 현실과 너무나 겉도는 비엔날레도 그렇지만 이왕에 문화수도까지 거론되었다면 그 기반부터 고급문화까지 궤적하는 전체적인 틀의 변화가 요구된다.

이점은 거창한 건물을 짓고, 최신시설을 갖춘 공연장이나 전시실을 확보하는 일보다 훨씬 중요하다. 컨텐츠를 어떻게 채워갈 것이며, 물려받은 유산을 어떻게 자생적으로 계승․발전시켜나갈 것인지가 우선이라는 말이다. 천년의 향기를 머금은 본질적인 예술의 활성화가 가능해야만 관광이나, 상품개발이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2005. 4. 19 광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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